포스테키안

2019 가을호 / 포스텍 에세이

2020-01-03 241

포스텍 에세이 / 볼수록 매력적인 고체역학

기계공학에 관련이 없는 지인들에게 고체역학 분야를 연구한다고 말하면, 대부분 고체역학이 도대체 뭐냐고 되묻는다. 나는 아직 고체역학을 간단하면서 재밌게 설명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왜냐하면 한두 마디로 간단하게 설명해서는 이 분야의 매력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다양한 사례를 들어 알고 보면 생각보다 흥미로운 고체역학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고체역학이란 뭘까?

기계공학과에 진학하면 기본적으로 4대 역학이라 불리는 고체역학, 동역학, 열역학, 유체역학을 배우게 된다. 그중 고체역학은 고체구조물에 힘이 가해질 때 어떻게 변형하는지를 다루는 학문이며, 주목적은 기계 부품에 적합한 재료를 선정해 가볍고 튼튼한 구조물을 설계하는 것이다. 정지된 물체의 역학이라니, 에너지나 역동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처음 접하는 학생들은 흥미를 느끼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고체역학 교재들이 기본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드는 예시들은 금속 혹은 나무 막대기나 판뿐이어서 배운 내용을 어떤 실제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쉽게 감이 오지 않을 수 있다.

지난 학기 고체역학 강의에서는 중간고사에 조금 색다른 문제를 냈다. 학생들이 참신한 문제였다고 표현을 했지만, 당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문제는 기계체조 링 종목에서 버티는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운동선수의 팔 근육이 얼마만큼의 힘을 내야 하는지를 선수의 몸무게와 팔의 길이, 팔의 각도 등을 이용해 계산하는 문제였다. 문제 풀이 방법은 금속 막대기들이 등장하는 예제들과 마찬가지여서 특별할 게 없지만 아마 학생들의 머릿속에 오래 남을 것이다. 기말고사 때는 시험에 필요할 것 같은 수식들을 종이에 다 적어오라고 했다. 역학을 암기과목처럼 공부한다면 재미도 없고, 외워야 하는식들이 너무 많아 벅찰 수밖에 없다. 어차피 시험을 본 후에는 금세 잊어버릴 공식들을 외우려 하기보다는, 원리를 이해하고 문제 상황에 식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고민한다면 고체역학을 배우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일상생활 속의 고체역학 

주변을 둘러보면 고체역학 문제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많다. 우리가 실생활에 활용하는 고체역학의 예로, 달걀 깨는 것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달걀을 깰 때 달걀의 뾰족한 부분이 아닌 평평한 옆면을 딱딱한 곳에 부딪쳐서 깰 것이다. 우린 이미 무의식중에 뾰족한 구조보다 평평한 구조가 더 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걀 구조의 형상에 따른 강성을 정량적으로 해석한 연구는 불과 7년 전에 발표되었다. 또한, 고체는 금속처럼 딱딱한 물질만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물놀이를 오랫동안 하면 손가락이 쭈글쭈글해지는 현상도 고체역학으로 설명된다. 물 때문에 불어난 표피는 면적이 증가하는데 진피가 붙잡는 힘을 가해 주름이 생기는 것이다. 조금 더 공학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올해 여름, 30도가 훌쩍 넘는 불볕더위에 철로가 늘어져 기차가 지연되곤 했다. 온도가 올라가면 철로가 열팽창을 일으키고 정도가 심하면 철로가 구불구불 휘어지기도 한다. 이처럼 외력뿐만 아니라 온도 변화, 수분 유출입 등의 외부환경 요인 때문에 고체구조물이 팽창하고 휘어지는 사례도 고체역학 문제이다. 새로운 소재와 기술의 발전으로 파생되는 고체역학 문제도 많다. 휴대전화가 힘을 받아 휘어지는 문제, 접히는 디스플레이에 주름이 생기는 문제도 고체역학 문제이다.

날씬한 구조물의 예측하기 어려운 변형

고체구조물 중에서도 앞서 예시로 든 달걀 껍데기의 구조나 피부의 표피, 철로 등의 공통점은 바로 얇거나 가늘다는 것이다. 이렇게 날씬한 구조물들은 부피감이 있는 구조물보다 변형의 크기가 매우 크고 변형의 형태를 이론적으로 예측하는 게 쉽지 않아서 실험 연구가 필수적이다. 다행인 것은 특정 변형 범위 내에서는 변형의 형태가 물체 크기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조물 자체의 크기가 아닌 종횡비, 즉 두께 대비 다른 방향의 길이가 변형모드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나노, 마이크로 크기의 작은 구조물이나 건축물과 같이 큰 구조물에 일어나는 변형의 원리를 알기 위해 다루기 쉬운 크기의 샘플을 제작하여 실험한다. 예를 들어, 로켓의 몸통이 찌그러지는 문제를 다양한 변수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과학자들은 탄산음료 캔 사이즈의 샘플을 제작하여 실험하기도 한다. 이렇게 손에 잡히는 크기로 실험을 하면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며 쉽게 실험할 수 있고, 발견한 원리를 아주 작거나 큰 스케일에 적용할 수 있다. 실험 고체역학은 실험 샘플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새로운 소재의 개발, 3D 프린팅 기술, 그리고 변형을 분석하기 위한 3D 스캐닝과 같은 이미징 기술에 힘입어 발전하고 있다. 고체역학 연구에서 고전적인 이론으로 풀기 어려운 복잡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실험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며, 기존 이론의 확장과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발상의 전환, 과거에 환영받지 못했던 변형을 이용한 미래기술 개발

전통적인 관점에서 고체구조물은 무언가를 지지하거나, 보호하거나, 힘을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변형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하지만 요즘은 크게 휘어지고 주름지는 등의 변형 원리를 활용하여 액추에이터, 센서, 에너지 저장 장치 등을 개발하는 연구들이 고체역학 분야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과학 공학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탄소 원자막인 그래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구겨진 종이를 택배 상자의 빈 곳에 넣어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재로 쓰듯이 과학자들은 그래핀을 찌그러뜨려 에너지 저장 장치로 개발한다. 또, 종이를 여러 가지 패턴으로 오려 제작한 종이 샘플의 변형을 연구하여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역학적 물성을 갖는 그래핀 기반의 메타물질을 개발하기도 한다.

앞으로 연구해야 할 흥미로운 고체역학 문제들은 무궁무진하다. 명심해야 할 것은 위에서 언급한 모든 연구주제의 바탕에는 고전적인 고체역학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이 글의 독자들에게 고체역학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학문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글/ 이안나 기계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