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19 여름호 /Science black box

2019-07-18 68

Science black box /조작의 역사

로버트 밀리컨과 하비 플레처가 전하 측정 실험을 하고 있는 이미지

전하 측정 실험을 하고 있는 로버트 밀리컨과 하비 플레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81224&cid=58941&categoryId=58960

우리 과학은 기본적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물론 끊임없는 의심 속에서 기존에 알려진 가설을 뒤집는 패러다임이 나오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연구 결과 모두를 처음부터 다시 실험하여 확인해 보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선행된 실험 결과들을 믿고 이를 발전시킨 연구를 수행합니다. 신뢰 기반의 과학 네트워크 속에서 연구자들은 연구 윤리를 꼭 지켜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호에서는 과학의 역사 속에서 이 신뢰를 무너뜨린 배반의 역사, 데이터 조작의 사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학교 생명과학과를 비롯한 실험 수업이 있는 학과의 학부생이라면, 꼭 배우는 특별한 노트 작성법이 있습니다. 바로 연구 윤리의 기초가 되는 연구 노트 작성법입니다. 연구실에서 실험을 할 때는 실험 과정과 결과를 이 노트에 기록하게 됩니다. 연구 노트는 일반적인 연습장과 달리 모든 면에 페이지 숫자가 기록이 되어 있고, 작성자는 실험 날짜와 작성자, 관찰자(증인)를 기록하고 서명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모든 면에 미리 숫자가 새겨져 있어, 작성자는 함부로 공책을 찢을 수가 없고 원칙적으로 이 노트는 지우개로 수정할 수 없는 펜으로 작성해야 합니다. 내 실험 과정과 결과를 기록하는 데 왜 이토록 복잡하고 엄격한 규칙이 따르는 것일까요? 이는 바로 ‘데이터의 조작’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실험 과정 중에 있었던 일이나 혹은 실험 결과로 나온 모든 데이터를 작성자의 의도에 따라 수정하거나 삭제하지 못하도록 이렇게 정해진 규칙을 지켜 노트를 작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모두 윤리적으로 엄격하게 이를 지킨 것은 아닙니다. 과학계의 역사상  연구 윤리를 지키기보다 자신의 성과를 먼저 이루기 위해 실험 데이터를 조작한 예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과학의 역사 속에서 실험을 통해 결과를 산출해 내는 과정이 논란이 되었던 사례를 알아볼까요?

먼저 가장 유명한 연구로 노벨상까지 받았으며, 여러분이 교과서에서 한번은 접했을 ‘밀리컨의 기름방울 실험’이 있습니다. 밀리컨은 이 실험을 통해 최소 단위의 전하량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물방울 대신 잘 증발하지 않는 기름방울을 이용해, 전기장을 가한 원통형 실험 기구에 매우 작은 기름방울을 불어넣었습니다. 기름방울 실험은 전기장 내에서 전하를 띠게 된 기름방울이 중력장과 전기장의 균형을 이뤄 정지하는 것을 이용하는 실험입니다. 이 실험이 있기 전, 당시 물리학계에서는 최소 단위의 전하량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밀리컨은 이 실험을 통해 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최소 단위의 전하량이 1.6 x 10-19 C 임을 계산하여 밝혀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밀리컨의 노벨상 수상 이후 밀리컨이 수행한 수많은 실험 결과 중 자신에게 유리한 데이터만을 선별하여 발표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밀리컨 사후, 그의 연구 노트를 조사했더니 175개의 실험 데이터 중 58개의 실험 결과만을 선택하여 발표한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연구 윤리를 지키지 않은 과학자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그의 데이터 선별은 전기장이나 대류 등으로 적절히 통제되지 못한 실험 과정에 의한 결과를 제외한 것이란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즉, 그가 발표에서 제외한 실험 결과는 실험 조건이나 방법의 문제로 오차가 너무 커 신뢰도가 높지 않았던 데이터라는 것이죠. 밀리컨의 실험은 기존에 최소 단위의 전하량에 대한 알려진 상숫값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자신에게 유리한 데이터만을 선별할 조건도 불충분합니다. 실험 결과 중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인 근거 없이 결과가 현상을 설명하기에 좋은 데이터만을 선별하여 다른 데이터를 삭제하는 것도 엄연한 데이터 조작으로 연구 윤리를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험 데이터를 선별할 때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반드시 기록되어 있어야 합니다. 밀리컨도 그가 데이터를 제외한 사유들이 포함된 자료가 발견되면서 데이터를 좋지 못한 의도로 조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버트 밀리컨, Robert Andrews 사진

버트 밀리컨, Robert Andrews Millikan(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illikan.jpg)

기름방울 실험 기구 겉 모습

기름방울 실험 기구 겉 모습(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81224&cid=58941&categoryId=58960)

앞선 사례와 달리 연구자가 고의로 자신의 데이터를 조작하는 사례도 빈번합니다. 2000년대 초반, 얀 헨드릭 쇤(Jan Hendrik Schön)이라는 과학자는 획기적인 연구 성과로 물리학계의 떠오르는 ‘스타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2001년에 세계적으로 매우 권위 있는 과학 저널인 《네이처》에 유기물을 이용한 분자 크기의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다는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실리콘 기반이었던 반도체가 유기물 기반으로 교체될 것을 암시하는 매우 파급력이 큰 연구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이 논문이 출판된 직후 물리학계에서는 그의 데이터가 지나치게 정확한 것을 수상하게 여겨 실험 결과를 더욱 면밀히 관찰한 끝에 물리학적인 모순을 찾아냈습니다. 과학자들은 쇤의 연구 결과 중 서로 다른 온도에서 진행한 실험 결과가 같은 노이즈 데이터를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후 수사 끝에 쇤이 그동안 발표했던 논문과 공동 저자로 발표된 논문에서 데이터 조작이 의심되는 실험 결과들이 연이어 밝혀졌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네이처》와 같은 과학 저널에 싣습니다. 그래서 과학 저널은 과학계의 연구 성과들과 동향을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출판물입니다. 그러나 쇤의 데이터 조작 사건으로 인해 과학 저널의 신뢰성이 흔들리게 되어, 이를 책임지는 출판 전 리뷰 과정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커졌습니다.

‘데이터 가공’은 실험을 통해 나오는 모든 데이터가 결과로 발표되기 위해 거치는 필수적인 단계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충분히 납득될 만한 논리적인 근거 없이 연구자가 자의로 실험 데이터를 유리하게 가공하는 것은 명백한 ‘데이터 조작’으로 연구 윤리를 위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계에서는 가공된 실험 결과의 원본인 날것의 데이터(raw data)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때 사용되는 데이터 중에는 실험 당시 작성한 연구 노트가 포함됩니다. 대학에서 연구 윤리를 준수하는 참된 과학자로 성장하기 위해 그 첫 수업으로 연구 노트 작성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실험 과정을 기록할 때 왜 날짜와 페이지 수, 관찰자의 서명이 들어가는 특별하고도 엄격한 노트에 작성해야 하는지 이해하셨나요? 과학에 흥미가 많으신 구독자 여러분들도 입학 전인 지금부터 실험해볼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실험이라도 정직하게 연구 노트를 작성하셔서 실험의 신뢰성도 높이고 연구 윤리를 지키는 습관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얀 헨드릭 쇤, Jan Hendrik Schön 사진

얀 헨드릭 쇤, Jan Hendrik Schön(http://lg-sl.net/product/scilab/sciencestorylist/ALL/readSciencestoryList.mvc?sciencestoryListId=SNES2006020001)

알리미 23기 생명과학과 17학번 김윤희

알리미 23기 생명과학과 17학번 김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