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0 여름호 / 복면과학

2020-07-27 111

경영학의 기초를 다진 노동자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

Frederick Winslow Taylor

 

여러분들은 산업공학이란 단어를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요?
산업공학은 저희에게 그다지 친숙한 용어는 아닌데요. 산업공학은 생산 활동의 종합적 시스템의 설계, 개선 등을 다루는 공학 분야라고 합니다. 이제까지의 복면과학에서는 물리, 화학 등 과학 분야의 과학자들을 만나보았는데요. 이번에는 산업공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Frederick Winslow Taylor’가 그 주인공입니다. 어릴 적 법률가를 꿈꾸던
꼬마 아이가 어떻게 세계적인 경영학자가 되었을지 궁금하지 않나요?
지금부터 테일러의 생애와 업적을 같이 한번 들여다 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복했던 유년 시절의 테일러

테일러Frederick Winslow Taylor 는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1856년에 태어났습니다. 변호사 아버지와 인권운동가 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테일러는 프랑스와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여행을 다녀오며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테일러는 아버지를 따라 법률가가 되기 위해 필립스 엑서터 아카데미에 들어가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입학시험까지 통과한 그는 대학교에 가는 날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시력이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법률가의 꿈을 접게 되었습니다.

 

꿈을 잃게 된 테일러와 새로운 시작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의 꿈을 접게 된 테일러는 기계공이 되기 위해 유압 공장에 들어가 수습생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4년간의 수습 생활을 끝낸 테일러는 1878년 ‘Midvale Steel’의 노동자로 취직하였습니다. 테일러는 재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 공장은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였기 때문에 빠르게 승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머지않아 생산 공장을 총괄하는 관리직으로 승진한 테일러는 노동자들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노동자들이 기계를 일부러 가동하지 않고, 최대한 일을 하지 않으려 ‘태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테일러가 살았던 시대는 19세기 말로, 2차 산업혁명과 함께 많은 공장들이 들어서게 된 시기였는데요. 산업혁명으로 인해 공장을 소유한 사람들은 무작정 공장을 돌려 제품을 생산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그들의 방식대로 체계적인 방법 없이 운영했습니다. 취업을 위해 치열했던 일자리 경쟁을 이기고 취업한 노동자들은 공장주가 제시한 조건대로 일하지 않으면 바로 해고되었기에 노동자들은 을의 입장에서 저임금으로 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공장주들은 생산품 혹은 작업의 양만큼 급여를 지급하는 성과급 방식을 도입하고 있었으며, 노동자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기업가는 많은 급여로 인한 지출을 줄이기 위해 작업당 급여를 줄였고, 공장에서 일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은 불만을 ‘태업’을 통해 보여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테일러는 체계적인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공장의 입장에서는 생산을 많이 할 수 있고 이와 함께 노동자의 급여도 합리적으로 보장해 줄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이렇게 등장하게 된 것이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이었으며, 법률가의 걷게 될 것만 같았던 테일러가 경영학자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 논문

 

과학적 관리법의 등장

‘과학적 관리법’.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체계적인 방식일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테일러는 먼저 일을 분류하고 하루의 작업량을 설정하기 위해 스톱워치를 이용해 하나의 일을 수행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
이 일을 하면서 움직이는 동선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분석하면서 최적의 동작과 도구를 조합하여 하나의 표준 작업 방식을 만들었습니다. 현재 공장에서 하는 일의 방식이 체계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테일러는 체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한 것이죠. 이렇게 표준 작업 방식에 따른 하루의 급여를 설정한 뒤, 이보다 더 많은 일을 수행하는 노동자에게는 추가적인 급여를 제공하는 차별적 성과급제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있었던 ‘Midvale Steel’ 공장의 노동자들에게도 새로운 동기 부여가 되면서 노동자들도 더 열심히 일하게 되었고, 생산성과 일의 효율성 모두 증대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이외에도 다른 작업에서도 효과적으로 과학적 관리법이 적용되는 것을 본 많은 사람들은 이를 ‘테일러리즘Taylorism’이라 불렀고, 이는 전 세계 곳곳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 ‘산업 합리화 운동’이란 이름으로 공장에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테일러는 다니던 공장 일을 그만둔 채 자신의 경험을 논문으로 작성하고,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1911년에는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에 논문을 게재하면서 연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이 논문에는 경영자들이 지켜야 할 4가지 관리 원칙을 제시하며 자신의 이론을 확립했습니다. 생산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체계화하여 기초를 다졌다는 데에서는 의미가 있으나, 인간의 일을 기계적인 원리에 준하여 관리한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존재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연구가 있었기에 다양한 후속 연구가 탄생할 수 있었고, 따라서 의미 있는 연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차 산업혁명 시기에 경영합리화와 함께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를 한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며, 이로써 그는 ‘산업공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알리미 24기 기계공학과 18학번 김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