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
전자에 의한 ‘음의 굴절’, 그래핀으로 세계 첫 실현
이후종 교수팀, ‘탄도성 전자소자’ 등에 활용 기대
물체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광학 투명망토, 아주 작은 물체라도 구면 수차*1 없이 뚜렷하게 볼 수 있는 초고해상도 슈퍼렌즈.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허황된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 물리학자들은 메타물질*2 등을 통한 ‘음의 굴절’*3이란 현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어떤 물질이 음의 굴절이 가능하면, 빛이 일반적인 굴절 방향과 다른 쪽으로 휘게 되어 물체와 닿거나 반사되지 않고 반대편으로 나갈 수 있다. 이를 통해 이론적으로는 상상 속의 ‘투명 망토’나 나노입자도 볼 수 있는 ‘슈퍼렌즈’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 동안 학계에서는 전자의 전파에 대해서도 음의 굴절을 나타내는 전도물질을 찾기 위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에서도 그래핀을 이용하면 음의 굴절이 가능할 것으로 수 년 전 이론적으로 예측됐지만, 기술적 한계로 인해 이를 실현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물리학과 이후종 교수, 이길호 박사(현 하버드대 박사후연구원)․박사과정 박건형씨 연구팀은 그래핀에서 전자에 의한 음의 굴절을 실현하는 데 성공, 관련 연구 성과를 물리학 분야 국제 권위지 네이처 피직스(Nature Physics)지 온라인 판(9월 14일자)을 통해 발표하여 학계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후종 교수 연구팀은 육방정계(六方晶系) 질화붕소(boron nitride)*4 단결정막 사이에 그래핀 막을 삽입하여 그래핀의 전하 이동도*5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전자빔묘화(電子線描畵)*6를 이용해 가장자리가 깨끗한 게이트를 얹는 방식으로 기술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이용하여 그래핀의 한 점전극에서 나온 전류가 다른 점전극에 초점이 맞춰지는 ‘베셀라고 렌즈’*7 현상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질화붕소를 이용하여 그래핀에서 전하 이동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기법이 최근 개발된 것에 착안, 베셀라고 렌즈 현상을 구현해 낸 것이다. 베셀라고 렌즈 현상은 그래핀이 발견된 이후 음의 굴절을 연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관측 대상이기도 하다.
연구를 주도한 이후종 교수는 “이 기법을 이용하면 이동도가 높은 전도체 판에서 전자의 흐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되어, 상온에서 작동할 수 있는 새로운 탄도성 전자소자 개발에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선도연구센터지원사업과 글로벌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1. 구면 수차( 球面收差, spherical aberration)
렌즈나 구면거울 등에서 물체의 상을 만들 때, 렌즈가 아무리 완벽하다 하더라도 그 상(像)은 물체의 꼴을 완전히 재현할 수 없다. 이것은 수차 때문인데, 이 원인 중 빛의 파장의 차이로 생기는 색수차(色收差)를 제외한 나머지 수차를 구면수차라고 한다.
2. 메타 물질(metamaterial)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특성을 구현하기 위해 빛의 파장보다 매우 작은 크기로 만든 금속이나 유전물질로 설계된 메타 원자(Meta Atom)의 주기적인 배열로 이루어진 물질이다. 메타물질은 자연적인 물질들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빛과 음파를 상호 작용하도록 설계, 투명망토와 고성능 렌즈 등 새 응용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3. 음의 굴절(negative refraction)
보통 공기에서 다른 매질을 통과하게 될 때 빛은 속도가 느려지는 대신 짧은 거리를 가려하기 때문에 ‘굴절’을 하게 된다.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은 모든 빛에 대해서 양(+)의 굴절률을 갖고 있다. 그러나 빛이 보통 휘는 방향과 반대 방향인 음(-)으로 급격히 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음의 굴절이라고 한다.
4. 질화 붕소(boron nitride)
흑연과 유사한 결정 구조를 갖는 B와 N의 화합물. 전기 절연성을 지니며, 색깔이 흰 것을 제외하고는 흑연과 꼭 같은 백색 흑연이다.
5. 전하 이동도(電荷移動度, carrier mobility)
이온이나 전자가 전계의 작용이 가해졌을 때에 이동하는 경우, 그 움직임의 용이성을 나타내는 정도
6. 전자빔 묘화(電子線描畵)
초점이 잘 맞추어진 전자빔을 이용, IC(집적회로)의 미세한 회로 패턴을 그려 내는 기법
7. 베셀라고 렌즈(Veselago lensing)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은 모든 빛에 대해서 양(+)의 굴절률을 갖고 있다. 그런데 약 40년 전에 러시아의 물리학자인 빅토르 베셀라고(Victor Veselago)는 음(-)의 굴절률을 가진 물질이 존재할 수 있으며, 이런 물질에서는 빛이 보통 휘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휠 것으로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