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POSTECH Creators 정민경 학생 (무은재학부 25학번)
“현재의 나는 과거 내가 한 선택의 결과다.
그렇다면 미래의 나는 지금 내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성영철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고등학생 시절, 그는 불치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연구를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 여겼다. 그 꿈은 그를 생화학과로 이끌었고, 분자생물학 전공으로 박사 졸업 후에는 전혀 경험해 보지 않았던 면역학에 매력을 느껴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한국에서 면역학은 생소한 분야였지만, 그는 “내가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면역학이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성취보다 희망과 꿈을 좇았던 여정, 그 속에서 그는 꿈을 상상하고 구체적인 실현을 그릴 때 가장 큰 행복을 느꼈다. 결국 소년의 꿈은 평생에 걸쳐 조금씩 실현되고 있다.
포스텍에서 37년간 이어온 그의 연구는 단순한 성과의 기록이 아니라, 삶의 철학이 되었다. POSTECH University Professor 성영철 교수와의 인터뷰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POSTECH 생명과학과 성영철 교수
"우리 몸을 방어하는 면역 메커니즘은 전쟁과도 같습니다. 외부에서 침입하는 병원균을 방어하는 것은 군대의 역할과 같고, 내부를 지키는 것은 경찰과 비슷합니다. 이처럼 정교한 시스템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면역은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주기도 합니다. 면역 반응이 지나치면 아토피나 알레르기 같은 자가면역질환이 생기고, 반대로 부족하면 암세포조차 제거하지 못합니다. 즉,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이 잡혀 있어야 하는 것이죠."
"우리가 한 번 병에 걸리거나 백신을 맞으면 다시 그 병에 걸리지 않죠. 우리 뇌의 기억장치처럼 면역도 특정 병을 기억합니다. 면역체계에도 그런 기억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걸 연구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 백신이었고, 그래서 흥미를 느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염병과의 싸움이기도 했습니다. 그 속에서 백신은 인류를 위협하는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을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안전한 방어 수단이 되었고, 상업적 가치 또한 크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미래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커서 의미 있고 중요한 연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재미와 가치,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춘 매력적인 분야였던 것이죠."
“자궁경부암 DNA백신 연구가 가장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벤치 투 클리닉(Bench to Clinic)’이라고 하죠. 실험실에서 연구한 것이 실제 환자에게 적용되어 생명을 살린 경험이기 때문에 저를 대표하는 연구라 할 수 있습니다.”
GX-188E는 DNA로 만든 자궁경부암 백신이다. RNA를 기반으로 하는 코로나19 백신처럼, DNA 또한 약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DNA 백신은 암세포를 제거하는 강력한 CD8+ 킬러 T세포를 잘 유도하는 특징이 있는데, 그는 이 점에 착안해 개발을 시작했다.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연구가 결국 현대의학으로는 치료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불치의 환자를 임상연구 과정에서 살렸을 때 그는 큰 기쁨을 느꼈다.
그 연구를 미국 암 학회에서 발표했을 당시, 국제적 영향력이 큰 의학저널 The Lancet Oncology(IF=35)의 에디터로부터 “발표한 자료만 72시간 내 논문을 써서 보내면 바로 게재하겠다”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긴 심사 과정을 거쳐야 하는 학술지인 만큼, 이 연구의 학문적 가치를 인정받은 사례로 남아 더욱 뜻깊었다.
“저는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처럼,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자세로 연구를 해왔습니다. 연구의 결과만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연구 자체가 재미있고 하고 싶은 의미 있는 일이기에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는 될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 그리고 재미죠. 실패해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시도하는 것이 잘 안된다고 포기하는 것보다 나중에 ‘왜 내가 그 때 끝까지 해보지 않았지’하는 후회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결과는 내 마음대로 나오지 않는 것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실패나 난관은 누구나 겪는 하나의 과정이고 성공으로 가는 디딤돌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가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죠.”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도 언젠가는 끝나고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문제의 핵심을 찾아내기 위해 명상을 하는 편입니다. 또한 존경하는 선배나 동료와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결책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스스로 문제의 본질을 찾아내려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배우며 잘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라고 믿습니다.”
“비만과 당뇨는 암과 같이 만성질환으로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미래에 인류 건강을 위해 해결해야 할 커다란 숙제이고 거대 시장을 가진 영역이라 이미 다양한 치료제가 나와 있습니다. 기존 약물들은 주로 GLP-1과 이와 유사한 호르몬을 병용하여 최대한 식욕을 억제하고 영양 흡수를 제한합니다. 반면 GLP-2는 장건강을 유지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만병의 근원인 만성염증을 억제 하는데 밀접한 관련이 있고, 특히 영양분 흡수를 촉진하는 기능이 있어 이 점에서는 GLP-1과 반대되는 역할을 합니다. 제가 연구하는 비만당뇨치료제인 PG-102는 GLP-1과 GLP-2를 동시에 활용합니다.”
“현대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2400년 전 ‘모든 질병은 장에서 시작한다’고 얘기했듯이 우리 몸의 전체적인 대사기능에 장의 건강이 매우 중요하고, 단순히 살을 빼거나 당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근육 손실을 막으면서 건강하게 당과 체중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개발 중인 비만·당뇨 치료제 PG-102는 매주 맞는 기존 치료제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고 한달에 1회 투여하는 편리하고 안전한 차세대 치료제가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처음에는 창업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 바이오제약 산업은 초기 단계였고, 신약 개발을 할 수 있는 생태계가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연구한 기술이 응용되어 임상에서 입증되고 궁극적으로 상용화 하려면 회사를 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동아제약의 연구소장이셨던 김원배 박사님의 제안으로 동아제약과 협력해 ‘프로젠’을 최초로 설립하게 되었고 이러한 창업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에 다수의 회사들을 설립하게 된 것이죠. 지금도 생명과학 연구를 하는 평범한 과학자를 기업가로 이끌어주신 김박사님께 깊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금까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었고, 게다가 다수의 바이오 회사를 창업하고 경영할 수 있는 기회를 내 삶에서 가진 것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축복이라 생각했기에 회사를 운영하면서 부수적으로 생긴 돈은 제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회사를 거꾸로 읽으면 사회가 됩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생긴 돈은 원래 회사를 키워준 사회로부터 온 것이니 내 생활에 꼭 필요한 것 외에는 다시 사회로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고, 누구나 사람의 인생은 ‘생로병사’로 각자에게 주어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두고 빈 손으로 떠날 것이기 때문에 살아있을 때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는 기쁨을 느끼며 살아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POSTECH은 저에게 과학자로서 우수한 연구를 할 기회를 제공해주었고, 기업가로서도 성장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잠재력이 뛰어난 학생들을 가르치며 같이 배우고, 그 학생들이 졸업 후 교수나 기업인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또 가족과 함께 지냈던 곳으로서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실험실과 같은 환경을 접한 것이 자연스럽게 진로와 꿈에 영향을 주었지요. 개인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너무 많은 도움과 혜택을 받은 곳입니다.”
그래서 그는 POSTECH University Professor로 선정되었을 때 과분하다고 느꼈다.
“저보다 학문적으로 훌륭한 분들이 많다고 생각했기에 예상치 못한 영광이었습니다. 그래서 남은 기간 동안 의미 있는 기여를 해야 한다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아마 학교가 제가 가진 기업의 경영 경험과 노하우를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전하길 바란 것이 아닐까요. 교수로서뿐만 아니라 여러 기업의 상장과 경영을 이끈 CEO로서의 경험도요.”
이러한 생각으로 그는 SL(Saving Lives)기금을 조성하고, 학문적 교류의 장을 지원하며, 학생들이 창의적인 기업가로서의 길을 꿈꿀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 현재는 프로젠과 에스엘바이젠의 성장을 지원하며 산업적으로도 기여하고 있다.
“한국 바이오제약 산업이 시작한지 이제 100년이 되면서 최근 글로벌기업과 함께 최종 제품허가를 받는 기업들이 국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 신약을 국내기업이 자체적으로 제품화 한 것이 없다는 것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UN이 정한 규정에 의하면 66~79세까지는 장년이고 80세 이후가 노인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노인이 되기 전까지 10년간은 그동안 실패에서 배운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항암백신과 당뇨비만치료제를 내가 창업한 회사에서 글로벌 블록버스터로 만드는데 도움을 주어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가 되는 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논어에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학생으로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진리를 배우고 익혀 깨우칠 때 나오는 도파민 같은 행복호르몬으로 인한 기쁨을 즐겨 볼 것을 권합니다. 창의적인 연구에는 실패가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신약 개발만 해도 성공 확률은 평균 만 분의 일 정도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실험에서 나온 후보물질은 독성, 임상, 제품화까지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런 과정에서는 성공도 있지만 실패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선 인식하고 연구성과만을 목표로 하지 말고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실패나 성공을 통해 무엇을 배웠고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을 때 느끼는 쾌감을 매순간 순간 즐기면서 자신의 영적 성장을 키워 나가기를 권합니다.”
“정보화 시대를 지나 4차산업혁명의 혁신적인 초지능과 초연결의 융합서적 시대에 접어들면서 지금 세상은 너무 빨리 바뀌고 있습니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에서 중심을 잡고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관으로 가치 있는 즐거운 삶을 살려면 전공서적 외에도 예술과 철학 그리고 신학 같은 인문학 관련 책을 읽고 다양한 관점에서 지인들과 같이 토론을 하며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이 진정 가치 있는 일인가를 고민하며 나를 품어주고 키워준 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설레는 꿈을 꾸는 것입니다. 꿈은 상상하는 순간 마음속에서 이미 시작됩니다. 될 것이라 믿고, 배짱을 가지고, 때로는 바보 같을 만큼 과감하게 시도해 보세요. 배움과 지식이 쌓이고 경험이 더해지면 생각한 것이 결국 현실이 된다고 하니 그 꿈을 향해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