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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oneering Minds] [POSTECH 40 Stories] “소수자는 더 많은 모험과 시도를 하고, 더 시끄러워야 합니다.” ㅡ POSTECH 1기에서 대한민국 최초 이공계 대법관까지, 이숙연 동문의 40년

  • 등록일2026.09.17
  • 조회수245

“소수자는 더 많은 모험과 시도를 하고, 더 시끄러워야 합니다.”

ㅡ POSTECH 1기에서 대한민국 최초 이공계 대법관까지, 이숙연 동문의 40년


글|POSTECH Creators 취재부 지은수 (산업경영공학과 24학번)


40년 전, 아무도 그 학교의 미래를 알 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제 막 문을 연 포항공대에 한 학생이 입학했습니다. 남들과 같은 길을 가는 것이 싫었고, 무언가 창의적인 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싶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그에게 포항은 아무런 연고가 없는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학창 시절 포항에서 열린 수학경시대회에 참가하며 좋은 기억을 남겼고, 당시 울산에서 근무하던 아버지가 포항공대 진학을 권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비슷한 성적의 친구들이 대부분 서울대학교를 선택하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익숙한 길 대신 포항으로 향했습니다.

그 학생은 산업공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예상하기 어려운 또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공학도가 법조인이 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약 40년이 흐른 2024년 8월, POSTECH 산업공학과(現 산업경영공학과) 87학번 이숙연 동문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이공계 출신 대법관으로 임명됐습니다. 법학이 아닌 공학을 먼저 공부했던 사람이 대한민국 최고법원에 앉게 된 것입니다.

현재 이숙연 대법관은 사법부 인공지능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AI 시대의 사법이 나아갈 방향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산업공학도로 시작해 법관이 되었고, 이제는 기술과 사법이 만나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셈입니다.

POSTECH 개교 1기 졸업생이자, 40년 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택했던 이숙연 대법관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지난 8월 19일 서울에서 진행된 인터뷰 현장



Part 1. POSTECH에서 배운 사고, 법관의 일로 이어지다


Q1. POSTECH 산업공학과를 수석으로 입학하셨습니다. 포항공대 시절의 대법관님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학업뿐만 아니라 동아리 활동에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룹사운드, 스킨스쿠버, 미술, 향토문화연구 등 다양한 동아리를 거쳤고, 과학생회와 여학생회 활동도 열심히 했어요. 사회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관련 서적을 찾아 읽고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룹사운드 활동


스킨스쿠버 동아리를 만들던 때가 생각나네요.  적극적인 친구들이 앞장서서 1기생 일곱 명 남짓이 모였습니다. 바다가 코앞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보자는 생각이었죠. 외부 업체와 연계해 전용 슈트까지 맞춰 입고 활동했습니다.

여학생회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어요. 입학 당시 여학생은 서른 명 남짓으로 아주 소수였습니다. 3학년 때 여학생회가 처음 만들어졌고, 4학년 때는 제가 회장을 맡았어요. 그때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훗날 법원에서 젠더법연구회 간사와 회장을 맡게 된 것도 결국 그 자리에서 이어진 셈이더군요.

캠퍼스 밖 기억도 선명합니다. 1989년에 문을 연 교내 ‘통나무집’을 자주 드나들었고, 효자시장에도 종종 놀러나갔어요.

돌아보면 그때의 경험들이 이후 법학을 공부하고 법관으로 일하는 데 오히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산업공학과 MT 단체사진 (보경사 방문)


Q2. 산업공학에서 배운 사고방식이 지금 법관으로 일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는 순간이 있나요?

법학은 산업공학과는 전혀 다른 체계 위에서 다른 언어를 쓰는 학문이에요. 그래서 산업공학적 사고방식이 법률 해석이나 판결 내용 자체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고민할 때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법관의 업무는 결국 수십에서 수백 건이 넘는 사건을 그 성격과 진행 단계에 따라 관리하는 일이거든요. 사건들을 분류해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다음 단계로 넘기고, 모든 단계를 거치면 결론을 내리는 흐름입니다.

그 과정에서 병목을 어떻게 해소할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절차는 다른 절차와 어떻게 병렬로 진행할지 고민할 때 산업공학적 사고방식이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느꼈습니다.

지금은 규모가 훨씬 큽니다. 대법관 한 사람이 한 달에 처리하는 사건이 400건에 이르러요. 대법관 12명 아래에 재판연구관 100명가량이 배치되어 있고, 사건을 나누고 검토하고 다시 모으는 과정이 마치 공장처럼 분업화·시스템화되어 있습니다. 그 시스템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제 몫의 흐름을 어디에 놓을지 가늠하는 데, 학부에서 배운 사고방식이 그대로 쓰이고 있습니다.


Q3. 학부 시절 경영정보시스템과 전산 관련 과목을 들었던 경험도 이후 법원의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당시의 전공 수업이 이후 법관 생활과 어떻게 연결됐나요?

제가 판사로 임용된 1997년 무렵에는 각자의 PC에서 워드프로세서로 판결문을 작성하고, 판례나 법률은 책자로 찾아보던 시절이었어요. 그러다 플로피 디스크를 거쳐 인트라넷에 판례 검색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등 빠르게 전산화가 진행됐는데, 다행히 저는 그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는 법원행정처에서 정보화심의관으로 근무하며 각종 전산시스템 개발의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을 했어요. 개발되는 사업을 이해하고, 전산 직원과 사업자들과 소통하며 시스템 개발을 이끄는 데 학부 시절 전산 과목을 수강했던 경험이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전산 시스템, 나아가 AI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와 그 효용과 한계에 대한 이해가 밑거름이 되어 그 위에 더 발전된 내용들을 쌓아 올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다만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40년 전 배운 지식만으로는 오늘의 변화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걸 절감해요. 그래서 지금도 뉴스와 책을 찾아보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Q4. 공학을 전공한 학생이 법조인이 되기까지, 그 사이에는 어떤 고민이 있었나요?

사실 입학했을 때 계획은 유학이었습니다. 졸업하면 당연히 유학을 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사회경험도 하고 싶어 대기업에 입사했고 우여곡절 끝에 법학에 흥미를 느껴 사법시험을 치렀고, 그렇게 법조계로 들어섰습니다.

아쉬움이 없지는 않아요. 학창 시절에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과 인문학 분야에 마음을 많이 쏟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적이 아주 우수하지는 못했고, 교환학생 기회도 놓쳤어요. 그때 한 번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합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는 자기 한계를 낮게 잡지 말라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할 수 있을 것 같은 만큼이 아니라, 갈 수 있는 가장 넓은 세상까지 도전해 보셨으면 합니다.



Part 2. 기술과 사법 사이의 경계를 그리다


Q5. 취임사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판결 속에 녹여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술과 관련된 사건이 늘어나는 지금, 이공계 출신 법관이라는 배경은 어떤 강점이 된다고 느끼시나요?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분쟁에도 관련 이슈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어요.

특허나 영업비밀 같은 지식재산 분쟁에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고, 형사사건에서도 디지털 증거의 기술적 성격과 법적 이슈를 함께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가 디지털 전환, 더 나아가 인공지능 전환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는 점에서 법률가로서 공학적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건 대체 불가능한 장점이 될 수 있어요.

다만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으려면 최신 내용에 계속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공부해야만 그 장점을 살릴 수 있습니다.


Q6. 반대로 AI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반드시 인간에게 남아 있어야 하는 영역도 있을 것 같습니다. AI가 법관의 판단까지 대신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대한민국 헌법은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데이터를 학습한 AI로 오늘의 분쟁에 대한 판단을 갈음할 수는 없어요. 개별 분쟁마다 법관의 지혜와 경험에 따른 판단이 있어야 하고, AI는 어디까지나 보조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5 세종 국제 콘퍼런스 (Sejong International Judicial Conference) (2025년 9월 23일)


Q7. 그렇다면 AI는 사법부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용될 때 가장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보시나요? 과거 시각장애인을 위한 ‘말하는 판결문’ 도입에도 참여하신 만큼, 기술이 사법 접근성을 높이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말하는 판결문’은 제가 정보화심의관으로 근무할 때 도입했던 것입니다.

대법관이 된 후 처음 맡았던 전원합의체 공개변론 사건 역시 지체장애인의 시설 접근권 보장을 위한 시행령 개정을 지체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사건이었어요. 그 재판을 열기 위해 대법원 청사에 미비했던 장애인 이동 및 편의시설을 정비하면서 저희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도 가졌습니다.

그 이후에도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해 차별을 없애는 사건들을 처리하면서 느낀 것이 많았고요.

인공지능위원회에서도 재판 과정에서 장애인, 문맹자, 외국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STT(음성을 문자로), TTS(문자를 음성으로), 아바타 수화통역, 외국어 통역 같은 AI 기술을 활용한 ‘장벽 없는 법정’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빠르든 늦든 이 제안은 반드시 실현될 거라고 생각해요.

AI는 이렇게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대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인간을 감시하고 소외시키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기술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더 자유롭고 풍요로우며 차별 없는 사회를 실현한다는 궁극의 목적을 지향해야 합니다. 적어도 그 목적에 위배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위원회 제3차 회의 (2025년 7월 25일)



Part 3. 다시 POSTECH, 그리고 다음 40년


Q8. 사법부 안에도 POSTECH 동문들이 있을까요?

판사로 한정하면 저를 포함해 네 명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서부지방법원과 대전지방법원에도 계시고, 최근 임용된 분도 있어요. 아직 손에 꼽을 정도지만, 40년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죠. 예전에는 동문 변호사들과 따로 모임을 가진 적도 있습니다.


Q9. 2024년 산업경영공학과 발전기금으로 1억 원을 기부해 주셨고, 현재 제4공학관에는 ‘이숙연 강의실’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후배들을 위한 기부를 결정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나눔과 기부는 이벤트가 아니라 습관인 것 같아요.

남보다 더 축복받은 사람은 그것을 나누어야 하고, 학교 발전의 밑거름을 보태는 것 역시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해야 할 의무이자 계속 이어 내려가야 할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십여 년 전부터 지원이 필요한 단체 등에 소액이라도 매월 꾸준히 기부를 해왔어요. 십여 년 전 포스텍 동문들이 캠퍼스 내 78계단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위한 기부금을 모을 때도 참여했었죠. 그 이후로 마땅한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2024년에는 그 무렵 자산을 매각해 제법 목돈이 생겨 기부를 마음먹었고, 산업경영공학과 김병인 교수님과 의논하니 학과 발전기금 형식이 좋겠다고 하셔서 발전기금을 기부했습니다.

영광스럽게도, 한편으로는 조금 쑥스럽게도 제 이름을 딴 강의실까지 마련되었습니다.

산업경영공학과 기금 전달식 (2024년 5월 22일)


Q10. 40년 전의 포항공대와 지금의 POSTECH을 모두 경험한 1기 졸업생으로서 맞이하는 개교 40주년의 의미도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40년 동안 POSTECH이 어떤 대학이 되기를 바라시나요? 또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마주할 후배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으신가요?

40년 전, 저는 남들과 같은 길을 가는 게 싫었어요. 무언가 창의적이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싶어서 포항공대를 선택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선택을 후회한 적도 있었어요.서울에서 자랐으니,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면 누렸을 것들이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돌아보면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마다 비슷했던 것 같아요.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든 그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대법관인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과연 같은 선택을 했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는 그 선택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포스텍은 소수자라고 할 수 있어요. 소수자는 더 많은 모험과 시도를 하고, 더 시끄러워야 합니다.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세상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거나 거기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개척자 정신으로 더 많은 모험을 하고, 더 뜨거운 이슈와 이벤트를 만들며, 사회 여러 분야로 또 해외로 뻗어 나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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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남들과 같은 길이 싫어 포항공대를 택했던 한 신입생은 이제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을 걷고 있습니다.

산업공학을 배운 경험은 수많은 사건을 바라보는 방식에 남았고, 전산을 공부한 경험은 법원의 정보화를 이끄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AI를 법정에 들이는 동시에, 기술이 결코 넘어서는 안 될 경계선도 함께 그리고 있습니다.

그가 후배들에게 남긴 말 역시 자신의 지난 40년과 닮아 있습니다.


“소수자는 더 많은 모험과 시도를 하고, 더 시끄러워야 합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던 한 학생의 40년은 그렇게 대한민국 최초의 이공계 대법관이라는 새로운 길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POSTECH의 다음 40년은, 또 다른 누군가가 선택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이숙연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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