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 없이 대학을 다닌다고?
POSTECH 무은재학부의 모든 것
글 |POSTECH Creators 김소현 학생 (신소재공학과 24학번)
POSTECH에는 ‘무은재학부’라는 이름의 조금 특별한 학부가 하나 있습니다.
POSTECH의 신입생 중 약 320명은 무은재학부로 입학하고, 약 40명 정도는 별도의 입시 전형을 통해 미리 전공이 정해지는 반도체공학과로 입학하게 됩니다.
이름도 낯설고, 개념도 쉽게 와닿지 않지만, 무은재학부는 POSTECH의 대부분의 신입생이 거치는 출발점이자, 학생이 스스로 진로를 설계할 수 있도록 마련된 시스템입니다.
무은재학부가 무엇인지, 어떤 교육과정과 특징이 있는지, 학과 선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무은재학부 커리큘럼을 끝내고 전공을 신청한 선배가 이 글에 정리해보았습니다.
POSTECH 진학을 고민 중이거나, 전공 선택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이 글이 무은재학부라는 선택지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무은재기념관 및 중앙광장 전경 사진
[1부] 전공 없이 시작하는 이유 : 무은재학부의 철학과 설계
‘무은재학부’의 명칭인 ‘무은재(無垠齋)’는 초대 총장이었던 김호길 박사의 호이면서, 학문에는 경계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다양한 학문 분야를 경험한 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전공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무은재학부가 설립되었습니다.
무은재학부 설립의 배경은 융복합 및 인공지능 시대로의 도래에 있습니다. 지식의 경계가 흐려지고 융복합이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는 시대 속에서,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짐에 따라, 더 이상 지식을 단순히 전달하기보다는 ‘배우는 능력’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커졌습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탐색하고 사고하며 선택하는 자율성과 창의성이 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철학을 제도화하기 위해, 무은재학부의 시스템은 전공 선택 시점을 기존(2학기 이수)보다 유연하게 조정되었고(3학기 이수), 선택 유보도 가능해졌으며, 다양한 기초과목을 이수하면서 타 전공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융합적 시야를 기를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학생 스스로 배움의 방향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이 구조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학습자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무은재학부 시스템은 단순히 전공 없이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제도가 아닙니다. 무은재학부는 대학의 철학과 문화를 이해하고 안정적으로 적응하며, 학업과 생활을 함께하고,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며, 교수/선배/동료들과의 상호 교류를 통해 자신이 나아갈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전인적 성장의 과정”입니다.
‘학문에는 경계가 없다’는 무은재의 뜻처럼, 어떠한 제약 없이 학업에 임하며 그 과정에서 학문적의 본질적인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것은 무은재학부의 중요한 “학문적”가치입니다. 더불어, 학업 생활 전반에서 활발한 소통과 교류를 통해 공동체 소속감과 개인 정체성을 형성하고,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자아를 완성하도록 아낌없이 지원하는 것은 무은재학부의 중요한 “인간적”가치입니다.
무은재학부로 입학한 약 320명의 학생은, 처음에는 소속된 전공 학과 없이 대학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과 단위’의 소속감이나 행사가 없지만, 무은재학부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도 학생 개개인의 탐색 권리를 보장하고, 소속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모든 신입생은 총 15 개의 분반 중 하나로 소속되고, 분반마다 지도교수 2명, 선배 SA(Student Advisor) 1명을 배정받습니다. 기숙대학인 RC에 입사하고 선배 RA(Residential college Advisor) 1~2명을 배정받습니다. 지도교수, SA, RA 선배들을 통해 대학 생활 적응, 교과목 수강, 전공탐색 등 대학 생활 전반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대학생활과 미래설계’, ‘학과탐색’ 등의 POSTECH만의 교과 프로그램과 Student Mentoring Program(SMP), 분반활동, RC 전체행사 등 비교과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POSTECH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을 제공받을 수 있답니다. 이 과정들을 통해 학생들은 자기주도성과 균형 있는 시야를 기를 수 있으며, 전공 간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적 사고를 바탕으로 더욱 유연하고 창의적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무은재학부 로드맵 (2025학번 기준)
무은재학부는 반도체공학과를 제외하고 POSTECH에 입학하는 전원의 신입생이 동일하게 거치는 체계로, 동일한 출발선에서 시작합니다. 무은재학부 도입 전 일부 학생에게만 적용되었던 ‘단일 계열 입학 후 학과 선택’ 과정을 전체 신입생으로 확장하여, 학생 스스로 학과를 탐색하고 미래를 구상하며 성장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 무은재학부의 핵심입니다. 다 함께 기초과목을 이수하고, 학과 탐색 활동들을 거쳐 2학년 2학기부터 각자의 전공에 진입하게 됩니다.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하는 시스템 자체가 학교 전체에 통합되어 있는 구조이기에, 전공 학업 진도에 뒤처질 걱정이 없으며, 진학 후에도 전공 커뮤니티에서 자연스럽게 소속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공통 기반 위에서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형 사고를 기를 수 있게 설계된 이 시스템은, 단순한 전공 선택의 자유를 넘어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안정적으로 적응하고 공동체 소속감과 정체성을 강화하며 주체적으로 진로를 설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줍니다.
[2부] 스스로 길을 만드는 시간 : 무은재학부에서의 성장 이야기
무은재학부 학생은 1학년 1학기부터 2학년 1학기까지 총 세 학기 동안 전공 없이 학교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 시기 동안은 주로 기초필수와 교양필수, 기초선택, STC 과목 등 전공의 기초가 되는 과목들을 공부합니다.
기초필수 | 미적분학Ⅰ∙Ⅱ, 일반물리Ⅰ∙Ⅱ, 일반화학Ⅰ, 인공지능기초, 일반생명과학, 프로그래밍과 문제해결, 일반물리실험Ⅰ, 일반화학실험Ⅰ, 학과탐색 |
교양필수 | 대학생활과 미래설계Ⅰ∙Ⅱ, 체력관리, 글쓰기 |
1학년 동안은 위 표의 기초필수, 교양필수 과목들을 두 학기 동안 나누어서 듣게 됩니다. 특정 분야로 조기에 편중되지 않고, 다양한 학문의 기초를 고르게 익히며 사고 기반을 넓혀 융합적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구성된 커리큘럼입니다. 1학년은 수강해야 하는 과목들이 이렇듯 지정되어 있고, 인원과 과목 별 분반이 정해져 있기에 학교에서 시간표를 자동으로 편성해 줍니다. 수강신청으로 고통받을 필요 없다는 점! 배정받은 시간표를 변경하고 싶다면 교수님께 양해를 구하고 시간표를 정정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기초선택 | 학과입문, 새내기연구참여, 프로그래밍 입문, 기업과정신과 기술혁신, 가치디자인스튜디오, 환경과학개론, 일반생명과학실험, 일반물리연습Ⅰ∙Ⅱ, 일반물리실험Ⅱ, 일반화학실험Ⅱ, 일반화학Ⅱ |
보통 1학년 때 기초선택 과목들도 수강하게 되는데요. 최소 5학점을 수강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서, 자신이 고려 중인 전공과 관련된 기초선택 과목을 공부합니다. 위 표의 과목 중 특히 학과입문과 새내기연구참여 과목들은 다른 데서 쉽게 볼 수 없는 무은재학부만의 특별한 기회입니다. 학과입문은 특정 과에서 어떤 공부와 연구를 수행하고,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등을 알려주는 강좌이며, 새내기연구참여는 새내기가 원하는 랩실의 연구에 참여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수업입니다. 과를 선택하기 전, 지망하고 있는 여러 과들의 학과입문, 새내기연구참여 과목을 수강해 보면서 본인이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지, 어떤 공부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지 고민하고 학과를 미리 경험할 수 있답니다.
1학년 동안 전공 공부를 위한 기초를 다지고 지망하는 학과에 대한 약간의 맛보기를 한다면, 2학년 1학기 때는 본격적으로 학과 진입을 위한 준비를 합니다. 관심 있는 학과들의 STC 과목을 수강하는 것인데요. STC란, Science and Technology Core의 약자로, 전공 학과들의 ‘필수 입문’ 과목들을 수강하도록 하는 시스템입니다. 학과별 평균적으로 3~4개의 STC 강좌를 개설하는데, 무은재학부생은 총 5과목을 수강해야 하기에, 본인의 지망 학과가 확고하더라도 다른 전공의 과목도 공부하게 됩니다. 2학년 2학기에 진학하게 될 학과에서 개설된 STC 과목은 대부분 과 진입 이후 전공필수 학점으로 인정되고, 다른 전공의 STC 과목은 전공선택 학점으로 인정됩니다. 다른 학과의 수업을 듣고 전공으로 인정받는 것, 학문에는 경계가 없다는 무은재의 뜻이 반영된 시스템인 것이죠. 추가적으로, 영재고나 과학고에서 AP 과목들을 이수하였다면, 기준에 따라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어 STC 과목들을 1학년 때 미리 듣기도 한답니다.
무은재학부 학생들은 전공 선택의 전 과정을 스스로 경험할 수 있으며, 학과를 정하기 전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진로를 탐색하게 됩니다.
1학년 동안은 학과탐색, 학과입문, 새내기연구참여 등의 과목을 수강하고, 학과별 멘토링이나 학과 구성원 간의 만찬 및 간담회 등에 참여하며 어떤 과로 진학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꾸준히 갖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화학공학과와 신소재공학과 사이에서 고민하여 1학년 2학기 때 두 학과의 학과입문 수업을 듣고, 신소재공학과의 새내기연구참여(새연참)에 참여하였습니다. 또한 각 학과의 멘토링 프로그램(신소재공학과 MSA, 화학공학과 CMP)과 화공인의 밤 등 학과 교류 행사를 참여하여 두 학과 분위기를 느껴보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졌습니다. 학과입문과 새연참에서서는 각 학과의 연구 주제나 전공 내용을 접할 수 있고, 멘토링이나 만찬, 간담회와 같은 활동에서는 학과 선배들이나 교수님들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진로에 대한 조언을 얻을 수 있습니다.
2학년 1학기 때도 마찬가지로 멘토링, 만찬, 간담회 등에 참여할 수 있고, 희망하는 학과의 STC 과목을 듣고 자신의 전공적합성과 흥미를 더 구체적으로 판단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저는 2학년 1학기 때도 신소재공학과와 화학공학과 사이에서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해 STC 과목으로 두 학과의 과목을 수강하였습니다. 총 다섯 과목을 수강하며 고민해보니, 공학적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연구 방향, 지향점이 화학공학과 보다는 신소재공학과와 더 잘 맞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무은재학부의 다양한 커리큘럼을 따라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이 저의 진로를 설계하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추가적으로, 3학기 만에 전공학과를 선택하기 어렵다면 선택을 유보할 수도 있습니다.

김소현 학생이 POSTECH 입학 후 신소재공학과에 진학하기까지의 여정
Q. 성적 무관하게 선택이 자율이면 특정 과로 편중되지는 않나요?
무은재학부의 가장 큰 특징은, 학과 선택이 성적과 무관하게 100% 자율이라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특정 과에 인원이 몰리거나 적은 경우가 생기기도 하지만, 무은재학부는 학생 개개인의 선택이 지닌 의미와 가능성을 존중합니다. 2025년 기준, 가장 선택 인원이 많은 학과는 컴퓨터공학과(60명), 가장 적은 학과는 화학과와 IT융합공학과 (7명)입니다. 학과들이 무은재학부생을 대상으로 많은 홍보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진행하여 매력을 알리기에, 아직까지 특정 학과를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인원이 편중되어 균형적이지 않더라도 그대로 학생의 선택은 자유롭게 두되, 수업 강좌 수를 유동적으로 조절하는 등 학과의 시스템에 차이를 두어 운영합니다. 즉, 무은재학부는 학생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주체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돕습니다.
구분 | 수학 | 물리 | 화학 | 생명 | 신소재 | 기계 | 산경 | 전자 | 컴공 | 화공 | IT융합 | 합계 |
신청결과 | 18 | 21 | 7 | 30 | 26 | 27 | 32 | 46 | 60 | 34 | 7 | 308 |
유 보 | 3 | |||||||||||
[2025-2학기 무은재학부생 전공신청 결과]
(대상: 2025년 1학기말 기준 정규학기 3학기 이상 이수 예정인 무은재학부생 311명)
무은재학부는 단순히 ‘전공 없는 학부’가 아닙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과학기술과 융합의 시대 속에서, 단일한 길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하며, 유연하게 진로를 설계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정답을 찾는 것 보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생각하며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내면을 성찰하고 가능성을 발견하는 경험.
무은재학부는 나만의 길을 개척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시작점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막막할 수 있지만, 학부와 학과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거예요.
이 과정 속에서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교류는 단순한 만남을 넘어 소중한 인연, 든든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POSTECH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서로 더 가까이서 밀도 높은 경험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니까요. 소수정예의 환경적 장점을 충분히 활용해 보길 바랄게요.
무은재학부에서 보낸 시간이, 단지 학업의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세상과 연결되는 진짜 배움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진심을 다해 응원합니다. 도전하고, 몰입하며, 여러분만의 길을 그려나가길!